행복은 만들어 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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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추석이 주었던 잊지 못할 즐거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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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추석이 주었던 잊지 못할 즐거움들




설레임




제 어머님이 40세가 넘으셔서 저를 낳으셨습니다.

형제들이 7남매로 지금 큰 조카(큰누나 아들)가 제가 같은 해에 태어났습니다.
엄마와 큰딸이 같이 배가 불렀답니다. 그러다 보니 큰누나와 제 나이 차이가 25살이나 됩니다.
형제들은 대부분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들 서울이나 부산으로 돈을 벌로 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형과 누나를 볼 수 있는 유일한 날이 거의 추석과 설이었습니다.
워낙 시골이다 보니 버스도 하루에 서너차례 밖에 다니지를 않았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전화도 없어서 추석에 올때 어느 시간에 올지를 몰랐습니다.
편지로 언제 집에 간다고 소식을 전하면 그날 아침부터 난 버스정류장에서
누나와 형들을 기다렸습니다. 버스가 오면 설레임으로 가득합니다.
버스에서 사람들이 내릴때마다 형제들이 내리지를 않으면 그 실망은 말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 형이나 누나가 차에서 내리면 한걸음에 달려가 안았습니다.

형과 누나를 기다리는 명절 전의 며칠은 그야말로 설레임 그 자체였습니다.




예쁜 옷



제가 어렸을때의 시골에서의 어린시절은 누구나 가난했습니다
옷도 거의 기워서 입었습니다. 양말 같은 경우는 시골에서 할머니가 여러번 기워서
나중에는 양말이 작아져서 신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을 때까지 신었습니다.
옷도 마찬가지 입니다. 빨리 달아지는 무릅 부분에 새 천을 대서 바늘로 박음질해서
입었습니다. 그래서 시골에서는 누구나 좋은 옷을 입기를 원했습니다.

가끔 어머님이 옷을 사준적도 있었지만 거의 일년에 한번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무조건 새옷을 입는 날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날이 명절, 추석날이었습니다.
형과 누나가 도시에서 일했기 때문에 시골에서는 입어보지 못하는 도시의 세련된
(그때 당시에는 엄청 세련된 옷이었음^^;;)옷을 사왔습니다
추석날 아침이 되면 시골은 진풍경이 벌어집니다.

누구나가 새옷을 입고 서로 자랑을 합니다.

그야말로 어린시절의 추석은 새옷을 입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날이었습니다.




용돈





시골에서는 결코 용돈이란 개념이 없었습니다.
지금처럼 가게가 많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동네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겨우 하나가 있었습니다. 가게가 멀었기도 하지만 용돈도 없어서 궁것질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는 배가 고프면 밭에서 무를 뽑아먹기도 하고, 고구마를 생으로 먹기도했습니다.

그때 당시에 유일하게 용돈을 받을 수 있는 날이 추석날과 설날 이었습니다.
추석날 아침이 되면 누나와 형이 부릅니다. 그래서 용돈을 줍니다. 그때 당시에 거의
몇백원씩 주었고 모은 돈이 2~3,000원 정도 되었습니다.

그 돈이 생기면 그토록 먹고싶었던 과자를 사먹습니다. 그때 당시 달콤한 과자는
거의 꿀맛과도 같았습니다. 추석날 아침이 되면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서로 받은 용돈을
자랑을 했습니다. 지금 아이들이 몇만 원씩 받는 것에 비하면 너무나 적은 돈이지만

몇주 동안 수중에 있는 돈으로 인하여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맛있는 음식과 과식




어린시절 먹을 수 있는 음식은 거의 밥이 전부였습니다.
배가 고프면 옥수수나 고구마, 감자를 삶아서 먹었습니다.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가 없었습니다.
계란부침이나 멸치볶음 등은 소풍 갈때나 먹을 수 있는 귀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추석은 어린시절 다양한 음식을 맛볼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송편과 한과 꿀 각종 전 그리고 사과와 배 등은 추석날 원없이 먹을 수 있었던 가장
기대되는 음식들 이었습니다.
요즘은 새콤한 사과를 더 좋아하지만 어린시절에는
달짝지근한 배가 과일 중에는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추석이 지나고도 약 1주일간은 만들어 놓은음식으로 인하여 배가 든든했던
어린시절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성묘




추석이 되면 온가족이 모여 성묘를 갑니다.

우리는 작은집이 한 동네에 살았기 때문에 우리집 식구들 7남매와 작은집 7남매를 합하면
그 식구만도 14명이나 되었습니다. 온가족이 모여 성묘를 가면 묘지에 식구들고 가득 찹니다. 
시골에서의 성묘풍경은 어디나 비슷합니다.

추석이면 온가족이 모이기 때문에 가족들이 한 무리를 이룹니다.

온가족이 한줄로 서서 성묘를 하는 모습은 어린시절의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별과 눈물...





그렇게 즐거웠던 추석 연휴가 끝나면 그토록 싫은 이별의 시간이 다가옵니다.
1년에 1번~2번을 보기 때문에 이별의 시간은 어머님에게도 형제들끼리도 아쉬운 시간입니다.
어머님은 그동안 수확했던 여러가지 곡물들을 이것저것 자녀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그리고 마지막 차에 오르는 순간 눈가에는 어느덧 눈물이 맺혀 있습니다.

저도 형과 누나들을 보내면서 울지는 않았지만 그 서운함의 크기는 말로 할 수 없었습니다.
형과 누나들이 떠나버리고 엄마와 둘이서 남은 시골집은 적막하기 그지없습니다.

어린시절 이었지만 그 이별의 아픔이 맘에서 가시기 까지는 며칠이 지나가야 했습니다.





어린시절의 추석은 나에게는 풍요로움이요 만남의 기쁨이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이별의 슬픔이기도 했습니다. 어느덧 장성하여 그때 내가 어린시절 만큼이나 어린 자녀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다가오는 추석이 어떠한 모습인지 참 궁금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을 한번도 보지 못한 자녀들에게 이번 추석 때에는 나를 애지중지 하셨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야기를 더 들려주어야 겠습니다.

행복한 추석 명절 보내세요^^